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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소

쓰러지기 전엔 내려가지 않을 사람들

쓰러지기 전엔 내려가지 않을 사람들
- 뜨겁던 이포보 고공농성현장 2박3일 취재기
 

고공농성 7일째인 28일 저녁, 여주 남한강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왼쪽에 이포보 고공농성장이 보인다.

쪽에서 먼저 촛불을 하나, 둘씩 켜기 시작했다. 그러자 깜깜한 강 건너에서 희미한 촛불 세 개가 밝혀졌다. 연락이 끊겨 걱정됐던 세 명의 농성활동가들이 보내는 신호였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그 희미한 불빛을 향해 손을 흔들고 "사랑해요"를 외쳤다. 상황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 쪽의 촛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이포보 고공농성 7일째를 맞던 상황실은 이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이포보 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웠다'. 공사현장 옆 작은 장승공원에 천막을 친 이포보 상황실은 제 2의 농성장이었다. 상근 활동가들은 고공농성자들의 힘겨운 투쟁을 함께 하기 위해 청바지도 뚫는다는 특공대 모기에게 물려가며 농성장 천막에서 잠을 잤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 속에서 한 여름 뙤약볕을 그대로 맞아가며 버텼다. 그러나 상황실보다 10도 정도 더 덥다는 보 위 고공농성장을 바라보며 어느 누구도 '더워 죽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고공농성자들은 "쓰러지기 전에는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한여름 무더위를 능가하는 뜨거운 의지가 그곳에 있었다.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세 명은 가끔씩 뜨거운 상판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까맣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들은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투쟁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매일 저녁 촛불집회를 할 때에도 어김없이 얼굴을 내비쳤다. 말없는 불빛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상황실 활동가들이 힘겨운 하루를 버티게 하는 것은 바로 그 희미한 불빛이 아니었을까.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


7일째인 28일, 이포보 현장에서는 강제진압을 준비하는 경찰의 움직임이 포착돼 상황실은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누구 하나 크게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미 고공농성이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해온 모양이었다. 또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듯도 했다. 다행히 이날 걱정하던 강제진압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배터리 등 지원물품 전달이 수차례 거절됐고 정부의 묵묵부답으로 농성이 일주일을 넘기게 돼 활동가들로서는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언젠가는 대통령이 응답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생각건대 모든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힘든 투쟁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망원경으로 멀리 보 위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농성 8일째인 29일 뜨거운 집회 현장의 뒤 편에 고공농성장을 볼 수 있도록 설치된 망원경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의 아내 이재현씨였다. 이씨는 "남편을 볼 수 있는 데가 여기 밖에 없으니까…"라고 조용히 말했다. 내가 박 위원장을 처음 본 것은 고양시 사리현동의 백로 서식지였다. 무차별 벌목으로 서식지가 파헤쳐져 백로 수백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현장이었다. 그는 죽은 백로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마음아파 하는 선한 사람이었다. 그와 나눴던 대화 중에 "내가 사실 지금 여기 있을 때가 아닌데..."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결국 그는 그 생각을 지키고자 더욱 뜨거운 현장 위에 올라가 있다. 

환경운동가 3명이 새벽에 이포보 위에 올랐다는 뉴스를 듣고 이씨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냈지만 "다음날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성 8일째 아직도 이씨는 망원경 앞을 지키고 서있다. '남편이 원망스럽지는 않냐', '힘들지는 않냐'는 나의 질문에 이씨는 침묵으로 답해왔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찬성, 반대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일 뿐인가


내가 이포보 현장에 있는 동안 4대강 사업을 홍보하러 온 4대강 서포터즈 대학생들과, 대화를 하겠다며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상황실을 다녀갔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반대 측 목소리를 들으려는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포터즈 대학생들은 단양쑥부쟁이 서식지를 옮기는 일이 "아프리카 초원이냐, 유럽이냐 선택의 문제"라며 상상을 초월하는 비유를 했다. 원희룡 사무총장은 "큰 틀에서 대화하겠다"며 원론적인 말들만 늘어놓고 갔다. 

이포보 농성장에 다녀간 여러 시민단체 사람들이 쓴 응원의 글

구나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곳에 서면 절실함과 진솔함이 묻어나는 쪽으로 가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절차무시는 기본이요, 온갖 불법과 거짓말이 횡행하는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후손들에게 살아있는 강을 물려주자며 목숨걸고 보 위에 오른 활동가들. 이 두 갈래 길에서 전자에 서는 이들을 잘못됐다 욕할 수는 없다. 원 사무총장의 말대로 "누구나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있으니까"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정의롭지 못하다. 

농성 9일째인 30일 나는 오마이뉴스 사무실에 앉아 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앉아 있는 이 자리가 결코 편하지 않다. 염형철 처장의 트위터를 통해 어제 전달하려고 했던 무전기와 음식들이 전달돼지 못했다는 불편한 소식이 들려온다. 이포보 현장에서의 3일동안 있으면서 햇빛에 그을린 얼굴과 팔 다리를 얻었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흔적이다. 긴긴 4대강 반대 운동의 분수령이 될 고공농성 현장을 직접 내 눈에 담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농성이 계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보 위에 오른 그들도 그 방법만은 택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고공농성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택한 최후의 선택이다. 환경운동연합을 포함하여 여러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1년 전부터 요구해온 사항은 한결같다. 4대강 사업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검증기구를 만들자는 것, 국민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자는 것.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고공농성가들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 외에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정부는 제발 이들의 소리를 들어라.

<오마이뉴스> 12기 인턴기자 안미소